저 멀리에서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, 아무리 다가가도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는 그곳, 즉 수평선은 가닿을 수 있거나 붙잡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. 시공간이라는 인식 체계 안에서, 경이롭고 아름다운 저 얇은 선의 존재란 위치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일 테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눈은 수평선을 본다. 그 존재는 시각적으로 명징하다. 빛의 반사와 투과를 순간순간 반복하는 일렁이는 수면 또한 그러하다. 물의 안과 밖이 끝임없이 겹쳐지기에, 수면은 물 그 자체도 아니지만 물의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다. 하지만 분명히, 우리는 언제나 수면을 바라본다. 붙잡을 수 없으나 시각적으로 명징한, 이러한 양가성을 회화적으로 재현하는, 이번 전시 《수평선》은 그리하여 그 자체로 회화적이다.
회화적 재현이란 기본적으로 어떤 시각적 대상을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고착시키는 일로부터 시작된다. 그리고 앞서 말했듯 수평선이나 수면은 붙잡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. 회화란 이러한 근원적 실패를 전제로 하는 일이다. 단순히 재현은 복제가 아니다라는 뜻이 아니다. 붙잡을 수 없는 대상이기에 결국 < 밤 드라이브 >에서처럼 어디인지 알 수 없고 < 여름정원 >에서처럼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장면만이 남겨지는 것이 회화적 재현의 요체인 셈이다. < 스노우맨 >의 일렁이는 표면에 (그려진 것이 아니라) 새겨진 동그라미들처럼, 회화 안에서 환영처럼 떠도는 알 수 없는 그것들을 어떻게든 고정시키려 할 때에서야 회화는 다시 시작될 수 있다. 작가의 “선명하게 보이는 것 너머에 명확하지 않는 것을 담아보고 싶은 마음”(작가 노트)은 거들 뿐.